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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이 풀어낸 현대 페미니즘 미술사
김원자
2009. 7. 28. 02:30
- 미술 문화 산책2008/11/12 13:20
[한겨레] 경기도미술관 ‘언니가 돌아왔다’
여성 화가 1호 나혜석 60주기 맞아
윤석남 중심 60대~20대 작가 26명
대 이은 절규에서 솟는 생명메시지
나혜석을 내세운 건 그에 대한 재평가가 한몫을 한다. 그는 시·소설에서 여성해방을 말하고 생활이 분방했던 것과 달리 화가로서는 ‘별 볼일 없는’ 풍경화만 남겼다는 게 주된 평가였다. 그런데 최근엔 달라졌다. 당시 여성이면 규방에서 풀·벌레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는 형편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 이젤 들고 외출해야 하는 풍경화 그리기 그 자체가 혁명적이었다는 해석이다. 윤석남씨 역시 김인순, 김진숙, 박영숙씨와 더불어 페미니즘 미술운동에 불을 댕긴 투사. 나혜석을 정신적 모친으로 삼고 있다. 나혜석과 윤씨를 소재로 한 조덕현씨의 메타 작품이 전시 성격을 집약한다. 윤석남-나혜석 2인 초상을 마주한 실제 윤석남 모녀의 초상이 거울을 통해 무한복제되는 것.
그림 이야기는 우리 어머니들로부터 시작된다. 아들 낳기 위해 한 지아비의 두 아내가 되고(봉인옥), 평생 하루도 편한 날 없이 가시방석에 앉아야 했던…(윤석남). 다음은 누이들. 원·명·청나라의 조공녀로, 일본군 위안부로, 미군 기지촌 쪽방으로 사라졌던 그들(류준화)의 끝은 ‘화냥년’이란 손가락질과, 죽어서 무연고 공동묘지에 묻히는 것(정은영)이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조신하게 앉으라는 잔소리는 화장실까지 따라다니고(송상희), 대개는 가지 잘린 나무처럼 기죽어 산다(정정엽). 조금이라도 튀면 마녀 사냥을 당하기 때문이다(박영숙).
이어지는 자문들. 핑크빛 아이스크림·화이트 초콜릿처럼 사탕발림된 여성 이미지(김희정)로 살아야 하는가? 남성들처럼 당당하게 성을 말하면 안 되는가(김진숙, 이은실)? 사랑한다면 쟁취하는 기쁨도 내 것 삼을 수 있지 않은가(손정은)?
당당한 답변들. 여성성 속에 인류 조상의 디엔에이와 미래를 담보할 녹색 건강함이 내재해 있다(김인순). 손가방, 멜가방, 끌가방은 여성한테 유목인의 피내림이 있다는 증거다(안진우). 특히 ‘틈의 작가’ 홍현숙씨는 여성이 남북간, 계층간, 남녀간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존재임을 분명히 한다. 여성의 섬세한 손길을 거치면 폐품들은 생명을 받아 예술품으로 승화하기도 한다(이순종, 이순주). 몸으로 말하는 답변이 인상적이다. 나혜석이 유럽 여행을 하면서 풍경화를 그렸듯 차하연씨는 독일과 프랑스 도시의 거리에서 끌차를 밀며 노숙자 문제를 외친다. 손국연씨는 중국에서 당당한 ‘북조선 사람’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태이는 영국 런던 북부에서 나혜석의 외로운 혼을 찾아내 현지 여성주의 선각자와 등치시킨다.
말하는 방식도 갖가지. 장지아씨는 톡 까놓는다. “여자라고 꼭 앉아서 오줌누라는 법 있어?”라고. 여성들이 서서 오줌 누는 장면을 사진 찍고 ‘찝찔한 그것’을 플라스크에 담아 크리스마스트리에 방울처럼 달았다. 그것은 링거줄 타고 내려와 배지의 식물을 키운다. 원성원씨는 ‘문득’ 떠오른 순간을 채집하고 방정아씨는 문득 깨닫는 순간을 수채화처럼 제시한다. 핫팬츠 아줌마가 시장 다녀오다 마주친 하늘, 해변 갈매기 틈에서 새우깡을 먹으며 바라본 바다 등등. 김주연씨는 드레스, 유아복 등을 배지 삼아 씨를 뿌려 싹을 틔우고, 강은수씨는 무희의 몸을 바람으로 바꾸면서 관객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
피날레. 거울을 멘 남자가 시내를 누빈다. 거울은 도시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불임의 도시를 낚아챈 사내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이민). 남는 것은 땅과 하늘. 원시의 생명이 다시 자라날 터다. 여성성이 곧 미래라는 강한 메시지다.
이렇게 진중한 전시가 수도권에서 열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서울 깍쟁이’가 돈 안 되고, 품에 비해 폼 안 나는 전시를 할 턱이 없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인 여성작가들 작품에 더욱 강렬한 메시지가 든 것과 같은 이치. 그 통에 경기도미술관이 더 빛을 뿜는다.
자료 출처_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