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장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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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장군(하)
위대한 생애는 위대한 예술로만 살아난다
2012년 10월 15일 (월) 14:57:20해남신문 기자  hnews@hnews.co.kr
  
 
 현재는 하드웨어가 중시되었던 시대에서 소프트웨어가 중시되는 시대에 이미 접어들었다. 내년에 개관될 양 지자체의 기념관은 외양을 가꾸는 것보다 이순신관련 문화콘텐츠를 생산하고 보급하는 일에 더 치중해야 한다. 사진은 내년에 개관될 명량대첩 승전광장과 전망대 조감도. 
 

최근 필자는 가까운 친구가 번역한 "해협"이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민족이 겪었던 강제징용을 다룬 소설로, 하하키기 호세이란 의사이면서 소설가인 일본인이 쓴 책이다. 당시의 상황이 리얼하고 아프게 와 닿아서 왜 이런 소설이 우리나라에서는 나오지 않는지, 이미 20여 년 전에 쓰이고 일본에서 영화로도 나왔다는데 왜 더 일찍 알려지지 않았는지 궁금했는데 소설을 읽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던 모양이다. "일제 36년의 압제를 얘기하면서 일본에 미움과 때로는 증오를 보내지만 정작 해협 같은 작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제 구호와 절규 속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일은 그만해도 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임진왜란과 이순신장군에 적용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임란이나 일제 36년은 분명 우리민족의 처절한 역사지만 우리가 후세들에게 보여주고 남겨둘 것은 허망한 절규가 아니라 영혼을 일깨우는 치열한 증언정신이며 그것을 뛰어 넘는 가슴 벅찬 예술작품인지도 모른다. 

임진왜란 최고의 유적 간직한 해남

1597년 정유년, 이순신은 5개월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난 이후 백의종군하여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물리치는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다.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대첩이다. 이를 계기로 임진왜란이후 재침하던 왜군은 그 기세가 꺾이게 되고 육지에서의 권율과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승군, 의병의 활약으로 7년의 왜란이 멈추게 된다.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에 의하면 전란직후부터 전국 각지의 사찰에서는 대형괘불을 제작하여 육지와 바다에서 죽은 원혼들을 천도하기위해 수륙천도재를 지냈다고 하는데 이게 우리나라 축제의 원형이기도하다. 지금 이순신장군과 관련해서는 전국적으로 73개나 되는 추모기관과 공적을 기리는 유적지가 있다고 한다. 출생지인 충남 아산 현충사는 물론 장군의 생몰시기와 맞춰, 혹은 전쟁수행 행적을 따라 전국 여러 곳에서 기념관이 만들어졌고, 동상이 세워졌고 기념행사가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해남은 이순신장군과 서산대사의 가장 중요한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올해도 명량대첩축제라는 이름으로 전라남도에서 주관하여 명량해전을 재현하는 행사를 수억 원대의 예산을 들여서 진행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관광객들의 흥미를 끄는 감각적인 행사가 대부분이고, 스케일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더욱이 진도대교를 사이에 두고 불과 몇km도 안 되는 지역에 있는 진도군과 해남군 양 지자체는 묘한 경쟁심리가 있는 듯하다.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것이긴 하지만 더 큰 랜드 마크 세우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110억 원을 들여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일대 1만1천988㎡ 부지에 2013년 말까지 승전광장이 세워지는가하면 지하 1층, 지상 7층 전체 면적 2천358㎡, 최고 높이 60m 규모의 전망대도 조성된다. 

해남군 역시 조선시대 해군참모총장격인 삼도수군통제사의 본영이 있었던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충무공 얼 계승 명량대첩 성역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총 사업비 150억 원이 투입되었고, 명량대첩비와 관련한 역사 정립 사업에도 70억 원이 배정돼 내년까지 마무리 될 것이다. 

문화콘텐츠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중요

요즘은 모든 문화 인프라가 '관광요소가 될 것인가'에 비중을 맞추는 추세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에 치중을 하고 관광객들도 보다 크고 웅장한 것, 보다 많은 예산을 들여 고급화하고 외양이 돋보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외양 속에 내실이 없다면 누가 반길 것인가. 올해 명량대첩축제만 해도 온라인 게시판에 "국수는 제대로 삶지 않아 냄새나고, 1회용품을 무식하게 사용하고, 음식 값은 바가지 씌우려고 눈에 불을 켜고..."하는 등의 불만과 행사주최자의 권위적인 자세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문화산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균형문제는 어제 오늘 나온 말이 아니다. 현재는 하드웨어가 중시되었던 시대에서 소프트웨어가 중시되는 시대에 이미 접어들었다. 기술에 있어서도 정형화된 기술보단 유연하고 창의적인 콘텐츠가 중시되는 시대인데 하물며 지자체의 관광레저나 문화산업은 말할 것이 없다. 

그런 맥락에서 내년에 개관될 양 지자체의 기념관은 외양을 가꾸는 것보다 이순신관련 문화콘텐츠를 생산하고 보급하는 일에 더 치중해야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200여년의 세월이 지난 1700년대에 와서야 정조대왕은 이순신의 임진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 13만자분량의 글을 모아 난중일기라는 충무공전서를 만들고, 서산대사의 사당인 묘향산에 수충사, 대흥사에 표충사를 건립하고, 사명대사를 위해 밀양 표충사를 건립했다. 전후 복구가 그만큼 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고 200년이 지나서야 시대정신이 임란의 조명과 충무공의 부활을 요청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지도자의 부재 속에 걸출한 영웅의 리더십이 간절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불필요한 갈등과 증오를 불러일으키면서 영웅의 모습을 왜곡, 과장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동안 여러 학술세미나를 통해서 충무공 이순신관련 정부나 지자체의 방만한 사업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당시 함께 고난의 시간을 보냈던 인물들이나 민초들의 부각이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승병을 이끈 서산대사의 제향은 대흥사에서 방안제사처럼 모셔오고 있다. 해남에서부터 균형을 맞춰야 할 일이다. 

'전쟁과 평화'같은 불후의 명작 나왔으면 

2009년 뉴스위크가 그 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 1위가 '전쟁과 평화'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성경이 세계100대 도서에서 41위를 차지했는데 '전쟁과 평화'(1869)가 1위('1984년'-조지오웰-이 2위, '율리시스'-제임스 조이스-가 3위)'위)라는 것은 이야기의 힘을 말해주는 것이다. 

나 역시 전쟁소설의 백미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고 생각한다. 러시아 건국 이래 일대 역사적 사건인 1812년 대 나폴레옹 전쟁 중 보르지노 벌판에서의 대전투,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점령, 모스크바의 대화재, 프랑스군의 퇴각 등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나폴레옹과 마라타이예프로 대비시킨 '전쟁과 평화'를 능가할 작품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김훈소설 '칼의 노래'의 다양한 에디션들. '칼의 노래'는 '전쟁과 평화'같은 대 서사극은 아닐지라도 이순신장군의 또 다른 모습을 통해 역사인물 조명의 한 지평을 열었다. 
 
농노에서 차르에 이르기까지 거의 500명에 달하는 등장인물과 이야기 속에 톨스토이는 인간의 상황에 대한 자신의 예리한 통찰력, 즉 자유의지와 정해진 운명의 대결이라는 테마를 불어넣어 불멸의 고전으로 만들었다. 이 소설에 영향을 받아 마하트마 간디도 그의 평화주의와 무저항주의를 채택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영웅적 모습만 부각시키는 단선적인 시각으로 21세기를 감동시킬 예술은 탄생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순신을 주제로 다룬 김훈의 '칼의 노래'는 한국을 대표할 문화콘텐츠의 전범이 될 만하다. 전쟁이라는 매개를 통해 소설은 전개되지만 책 속에는 전쟁보다는 인간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KBS에서 몇 년 전 방영했던 '불멸의 이순신'이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김명민의 모습으로 재탄생되었다면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전쟁의 참혹함과,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백성과의 관계, 임금에 대한 이중적 고뇌, 부하 장수들에 대한 생각들로 괴로워하고 흔들리는, 우리와 비슷한 인간의 모습이다. 

한산(閑山)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歌 )는 남의 애를 끊나니…


후손들에게 역대 최고의 위인으로 기억되는 용감무쌍한 이순신장군, 그러나 그의 고뇌는 무인(武人)으로서 자신에게 가해지는 충군애국 요구에 순순히 응할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임금은 충직한 신하조차 믿지 못하는 극도의 불안과 의심의 지옥에 떨어져 이순신을 잠재적 반역자로 추궁하지만, 사직과 왕위를 위협하는 또 다른 적 일본을 막기 위해서는 순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은 적이었다"는 역설적인 사실에서 장군의 고뇌는 비롯된다.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탐관오리들과 정치적인 실리만을 구하고 전장을 외면한 명나라 장수들, 그리고 뒤엉켜 있는 세상과 자신을 옭죄고 있는 이 같은 상황을 벨 수 없어 징징 울던 장군의 칼이 향한 곳이 바로 적진이라는 해석을 통해 김훈작가는 이순신의 실존적 고뇌를 그려내 보였다. '칼의 노래'는 '전쟁과 평화'같은 대 서사극은 아닐지라도 역사인물 조명의 한 지평을 열었다고 본다. 죽을 곳을 찾아가는 영웅의 모습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문제까지 보여주어 그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위대한 인물은 위대한 예술로서만 영원히 존재한다. 이순신관련 기념행사들이 하드웨어준비의 반만큼이라도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작업에 투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원자(호남대 외래교수, 본지 편집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