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창강 김두만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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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창강 김두만선생

2012년 11월 26일 (월) 10:08:29해남신문 기자  hnews@hnews.co.kr

은사명종(隱寺鳴鍾) 백려청(百慮淸) 달기원기(達基元氣) 욱천성(郁天聲)
영사만호(令斯萬戶) 육시경(六時警) 홍제치치(弘濟蚩蚩) 고해맹(苦海氓)
(은적사 울리는 종소리 잡념을 없애주니 원기에 도달하여 하늘에 빛나는 소릴세
우리 고을 집집을 여섯시로 깨우치니 널리 어리석고 어리석은 고해의 창생을 건지네)

 

  
 
   
 

해남8경 중 은사모종(隱寺暮鍾)부분이다. 은적사의 저녁종소리를 이렇게 격조 있고 승화된 글로 전해준 사람, 우리나라 다문화 연구에 혁신을 불러일으킨 동다송과 다신전을 번역한 업적을 남긴 이, 일생동안 200여 편에 이른 한시를 썼지만 책 한권 엮어내지 못한 불운한 한학자, 그가 바로 창강 김두만선생(1909~2001)이다. 지금은 '신 해남8경'이라 해서 연봉녹우, 두륜연사, 고천후조, 명량노도, 우항괴룡, 육조단범, 달마도솔, 주광낙조만 군 홈페이지에 소개되고 있지만, 이것 말고 또 다른 해남8경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김두만선생은 옛 해남의 명승경관을 누구보다 빼어난 한시로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해남팔경, 가슴속 더러움 씻어내는 곳이여...

1경 금강폭포(金剛瀑布)
은황직하(銀潢直下) 옥룡명(玉龍鳴) 분설비공(噴雪飛空) 작우성(作雨聲)
사차소인(使此騷人) 흉세처(胸洗處) 휘룡누속(휘룡陋俗) 취유정(醉幽情)
(은빛 물줄기 곧바로 떨어져 옥룡이 우는 듯 눈처럼 피어나 공중을 날아 빗소리를 내는구나. 내 가슴속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내는 곳이여 속세의 더러움은 들리지 않고 그윽한 정취에만 취해 있었네.)

2경 홍교유수(虹橋流水)
홍교고가(虹橋高架) 시남주(是南州) 곽외청계(郭外淸溪) 일곡류(一曲流)
수시탁영(誰是濯纓) 수탁족(誰濯足) 감수세랑(堪隨世浪) 불수수(不須愁)
(홍교가 우리 고을에 높이 걸려있어 성을 감돌아 맑은 물 한구비 흘러가네. 거기서 누구는 갓끈을 씻었고 누구는 발을 씻었던가. 아서라 세상사 물결 따라 근심 없이 살아나 보세)

3경 연봉제월(蓮峰濟月)
청산우과(靑山雨過) 만청신(晩晴新) 호월원원(皓月圓圓) 불옥진(拂玉塵)
아역정배(我亦停杯) 기일문(其一聞) 항아하처(姮娥何處) 여수린(與誰린)
(청산에 비 지나가니 맑은 기운 새롭구나. 둥글고 밝은 달 아름다운 티끌을 흩뿌리네.
나 또한 잔을 들어 멈추고 달에게 묻노니 항아는 어디서 누구와 노니는고)

4경 두륜귀운(頭輪歸雲)
여차여개(如車如蓋) 역산두(역山頭) 시혹수풍(時或隨風) 촉석수(觸石收)
풍유조화(豊유造化) 수능식(誰能識) 미산팔방(彌散八方) 잠불류(暫不留)
(수레 같고 일산 같은 것 산머리에 덮여있어 때로 혹 바람따라 사라진듯 다시 보이네.
구름 신의 조화를 누가 능히 알리요. 천지간에 덤북차고 흩어져 잠시도 머물지 않음을)

5경 미암청남(眉岩晴嵐)
미명암하(眉明岩下) 태평루(太平樓) 숙기(淑氣)인온 안계수(眼界收)
옥녀포금(玉女抱琴) 탄일곡(彈一曲) 오향세세(吾鄕世世) 영무수(永無愁)
(미명암 아래 태평루 상서로운 맑은 기운 눈앞에 상쾌하네. 옥녀가 거문고를 들어 태평가를 연주하니 우리 고을 세세로 걱정이 없으리)

6경 은사모종(隱寺暮鍾)생략

7경 호산명천(葫山鳴泉)
위타산세(山勢) 자고저(自高低) 여필호봉(如筆葫峰) 백인제(百人梯)
정수초의(鄭수草衣) 다음처(茶飮處) 유천용출(乳泉湧出) 석간제(石間堤)
(산세가 우불구불 스스로 높 낮는데, 붓 같은 호봉이 백길이나 솟아있네. 정처사와 초의선사가 차 마시던 곳엔 유천만이 석간에서 솟아 나오네)

8경 남곽낙조(南郭落照)
도도취흥(陶陶醉興) 상고루(上高樓) 공탄광음(空歎光陰) 여수류(如水流)
수장우공(誰將虞公) 지일검(指日劒) 정사낙조(停斯落照) 계산두(繫山頭)
(매우 화락하게 취한 몸으로 높은 다락에 올라가 세월이 물같이 흐름을 부질없이 탄식했네. 뉘라서 우공의 지일검을 잡아 기울어가는 저 해를 멈추어 산머리에 매어 둘꺼나)

서림 단군전 옆 작은 집에서 한학 몰두

절제된 언어형식에 사상과 감정을 담아내는 한시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지만 옛 선비들에겐 교양이었다. 한시는 산수 자연을 노래하는 것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서 교훈을 취하기도 하고, 민중의 생활상을 자세히 묘사하기도 하며, 높은 경지의 구도정신을 노래하기도 한다. 때로는 신랄한 풍자의 목소리로 현실을 비판하기도 하며, 또 기발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사물을 묘사한다. 웬만한 한문 실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문학이 한시에 기대어 발전해왔거니와 창강은 이 같은 한시의 묘미와 한학의 깊이에 빠져 한 세상을 살았다. 

밥을 굶어도 한학 공부는 거르지 않았던 창강선생, 그의 한학에 대한 외길은 그에게 가난이라는 혹독한 고난을 주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가 기거했던 구계리 서림 단군전 옆 초라한 기와집이 그의 인생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그 작은 집에서 그는 매일 깨알같이 적힌 한문책과 씨름했다. 방안 가득 쌓인 책 속에 앉아 침침해진 눈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책을 보는 일이 그의 일상사였다. 

검은 옷에 검은 가방을 들고 지팡이를 든 모습이 상징이 그의 상징이었다. 깐깐한 성격에 외골수였던 그는 학문에 있어서도 아집이 대단했다. 그런 성격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었고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의 학문적 역량에 비해 많은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원래는 부잣집 맏아들이었다고 한다. 방암 김창현선생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큰 부자였던 부친은 그를 위해 집에다 독서제를 열었다. 독서제에서 21살까지 한학을 배운 후 일본유학을 떠나 31살 때 귀국, 결혼을 한 그는 해남면사무소에서 식량계장을 지냈고 해방이 되자 공직생활을 접고 해남읍 신안리에서 서당을 열어 한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한때는 생계를 위해 소도 키웠지만 한학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남의 비석에 새길 글을 지어줄 때도 적든 많든 주는 대로 수고비를 받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프로페셔널 전업 글쟁이요 학자였다. 

  
 
 유구한 세월 속에 풍경이 변하는 건 어쩔 수가 없지만 새로 생긴 풍경보다 창강의 한시 속에 나오는 옛 풍경이 그리울 때가 있다. 사진은 일 년에 몇 번 밖에 볼 수 없다는 금강폭포. 
 <사진제공 : 천기철 남도산악연구소장>
 
 

가난 속에서도 오직 학문만, 창강의 한시 재조명을

우리의 선조들은 각 지방마다 그 곳을 대표하는 명승지를 시와 노래, 그림으로 세상에 알려왔다. 주로 10경, 9경, 8경, 3경 등인데 이중에서도 8경이 가장 많다. 8경이란 단순히 명승지 여덟 곳이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의 대명사이자 지역별로 선택된 자연 경관 전부를 뜻한다. 곧 그 고장의 8경은 그 지역 자연 경관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조선팔도 어느 한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지만 북쪽의 금강산 줄기가 뻗어 해남에 와 멈추었다는 우리고장, 선생의 시선 가는 곳마다 글이 되어 나왔다. 하여 창강의 '삼산8경'도 해남8경 못지않게 유명하다. 소헌 성인호 화백의 병풍 그림에 새겨져 삼산면사무소에 전시돼 있는 삼산8경의 내용을 보자. 

만수폭포(萬樹瀑布) 오시미재 약수터 인근 바위틈 새로 쏟아지는 폭포의 웅장함.

상가명월(上駕明月) 상가리 뒷동산에서 떠오르는 달이 물에 비추어지는 모습의 아름다움.

신흥명천(新興名泉) 감당리 마을 입구에 있는 우물샘의 시원한 맛.

송정노송(松汀老松) 송정 마을을 굽이 보고있는 노송의 고결함을 노래.

어성귀범(漁城歸帆) 바다와 육지를 연결했던 어성포에 모여드는 귀선들의 장황한 모습.

병산무학(屛山舞鶴) 충리 마을에서 바라본 병산의 노송과 노송 위에서 노닐던 학의 모습.

응봉두견(鷹峰杜鵑) 매정리 입구 다리 위에서 바라본 매를 닮은 산봉우리와 그곳에서 들리는 두견새 울음소리.

두륜귀운(頭輪歸雲) 두륜산에 머물고 가는 구름의 청초한 자태와 아름다움. 이런것들을 그는 한시로 풀어쓰고 돌아가시기 직전엔 다경을 번역하기도 했다. 다문화에 관심과 조예가 깊었던 김두만선생은 760년경 중국 당나라 사람인 육우가 지은 다경을 번역한 초고 원고를 남겼고 200여 편에 이른 한시를 썼다지만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만 금강산 아래 팔각정에 그가 지은 태평정기가 목판에 새겨져 있고 대흥사 부도전 옆에 세워진 비석과 주차장 앞에 세워진 이동주 시비에 또 한 구절이 보일뿐 서책으로 묶인 것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 뿐이 아니다. 유구한 세월 속에 풍경이 변하는 건 어쩔 수가 없지만 새로 생긴 풍경들의 도식화된 모습 앞에서 자꾸만 옛 풍경들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홍교유수(虹橋流水), 바위에 부딪쳐 뛰어 오르면 겹겹 무지개로 펼쳐지던 맑은 물, 어포귀범(漁浦歸帆)저녁노을을 싣고 해창만 굽이굽이 돌아 포구로 돌아오는 만선 깃발, 은적사의 저녁 종소리를 상상으로만 그리고 멈춰야 할까? 창강 김두만 판 구 해남8경의 디지털콘텐츠를 기대해본다. 
 

(김원자 호남대외래교수, 본지 편집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