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박성룡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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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박성룡 시인  땅끝해남의 인물자원 

2012/12/12 15:18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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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를 위한 땅끝, 해남의 인물자원
    
20. 박성룡 시인
자연과 생명 노래했던 '고향은 땅끝'의 시인
2012년 12월 10일 (월) 15:21:52해남신문 기자  hnews@hnews.co.kr
  
 
 화원면 마산리 출신 박성룡시인 
 

가을에 차를 타고 도시 밖을 조금만 빠져나가도 남도의 자연에서는 붉게 익은 감이며 향기로운 모과 같은 과목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잎을 다 떨어뜨리고 붉은 감만 매달고 있는 감나무는 단풍보다 더 아름답다. 사람의 손이 쉽게 닿는 곳에 있어도 눈으로만 감상할 뿐, 손으로 탐하지 않는 제법 넉넉한 세상이 되었다. 

여기서 과일이란 쉬운 단어를 쓰지 않고 구태여 과목이라고 한 것은 순전히 박성룡 시인(1932-2002)의 '果木'이란 시를 읽은 후부터다. '과목' '풀잎'같은 우리 현대시의 역사에 기록될 명편들을 남긴 시인, 깊은 가을이 되면 해남이 낳은 또 하나의 걸출한 시인, 박성룡을 이 지면에 불러오리라했는데 어느새 눈발이 날리는 겨울로 접어들고 말았다. 

그래도 그를 빼고 '해남의 인물'을 말할 수는 없다. 시인은 해남 화원면 마산리가 고향이다. 지역출신으로는 드물게 사상계,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의 중앙언론사에 재직하는 한편 주옥같은 시편들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풀잎'은 언어예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수작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 되고 있다. 

60년대 신 서정 보여준 '풀잎'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잎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 박성룡 '풀잎' 전문 -



김춘수의 시 '꽃'에 버금가는 존재론적 의미와 청각적 아름다움을 지닌 '풀잎'은 1965년 소년한국일보에 동시로 발표된 후 75년도에 중학교1학년 교과서에 실리면서 더욱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었다. '풀, 이라는 자연 사물을 철저히 추구하여 서정성과 서경성이 융합된, 전통적인 서정시인과는 다른 신 서정을 보여준 시로 그를 60년대 대표적 시인 중 한 사람으로 단번에 자리 잡게 한 시다. 그렇다 해도 나는 동시'풀잎'보다는 데뷔년도의 시 '郊外'나 앞서의 '과목'의 시 정신과 일화들이 더 좋다. 

  
 
 박성룡 시인의 생가터인 화원면 마산리 전경. 
 
박시인은 어릴 적 광주로 이사하여 서석초등학교, 광주서중, 광주고,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56년 27세 약관의 나이에 '문학예술'에 '교외', '화병정경' 등으로 등단한다. 당시의 '문학예술'지의 시 추천은 조지훈, 이한직, 박남수 시인 세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추천이 되지 않는 '좁은 문'으로 소문이 났는데 투고돼 온 박성룡의 시 '교외'를 본 3인은 만장일치 합의를 했다고 한다. 

등단 시 '郊外' 통해 '언어의 마술사' 칭호

Ⅰ//無毛한 生活에선 이미 잊힌 지 오랜 들꽃이 많다.//더욱이 이렇게 숱한 풀벌레 울어 예는 西녘 벌에/한 알의 圓熟한 果物과도 같은 붉은 落日을 刑罰처럼 등에 하고/홀로 바람 외진 들길을 걸어보면/이젠 자꾸만 모진 돌 틈에 비벼 피는 풀꽃들의 생각밖엔 없다.//멀리멀리 흘러가는 구름포기/그 구름포기 하나 떠오름이 없다.//

Ⅱ//풀꽃 같은 것에라도 젖어 있어야 한다./풀밭엔 꽃 잎사귀,/과일밭엔 나뭇잎들,/이젠 모든 것이 스스로의 무게로만 떨어져 오는/山과 들이 이렇게 無風하고 보면/아 그렇게 푸르기만 하던 하늘, 푸르기만 하던 바다, 그보다도/젊음이란 더욱 더 답답하던 것.//한없이 더워 있다 한없이 식어 가는 피 비린 終焉처럼/나는 오늘 하루 풋물 같은 것에라도 젖어 있어야 한다.//

Ⅲ//바람이어.//풀섶을 가던, 그리고 때로는 저기 北녘의 검은 山脈을 넘나들던/그 無形한 것이어./너는 언제나 내가 이렇게 한낱 나무 가지처럼 굳어 있을 땐/와 흔들며 愛撫했거니,/나의 그 풋풋한 것이어./불어다오./저 이름 없는 풀꽃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아직은 이렇게 가시지 않았을 때/다시 한 번 불어다오, 바람이어.//
아, 사랑이어.

무모한 생활(문명생활)에선 이미 잊힌 지 오랜 들꽃(자연, 실체의 언어)이 많다.' 시인은 풀벌레 우는 서녘 벌을 걸어가면서 잊혀진 황금빛 노을을 상기시키고 바람 외진 들길과 돌틈 사이에 피어있는 들꽃들 생각만 한다.

즉 사물과 언어, 언어와 실재의 분열이 극심해져 가는 현대와 그 언어 공간에 들꽃, 노을, 바람, 들길. 돌틈 外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나아가서 언어의 원초적 통일성을 지향하지 못하는 사유공간이 있으면 단단히 고삐까지 쥐고서 차단시키고는 실체의 언어세계로 몰아대는 것이다.

김종길시인은 박시인의 시선집 풀잎(1999년 창작과비평사 간행)을 해설하는 글에서 '교외'를 당시 우리 시단을 통틀어서도 가장 원숙한 시적 음성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서정주의 '無等을 보며'나 '光化門'과 비슷한 나이의 톤이라고 했다. "그의 시는 조형성과 음악성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처서기(處暑記)'에 보이는 벌레소리의 묘사(어떤 것은 명주실 같이 빛나는 시름을, 어떤 것은 재깍 재깍 녹슨 가윗소리로, 어떤 것은 또 엶은 거미줄에라도 걸려 파닥거리는 시늉으로 들리게 마련이지만...)는 우리 시뿐만 아니라 세계시를 통틀어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절창이다"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果木'…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

과물(果物)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事態)처럼
나를 경악(驚愕)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薄質) 붉은 황토(黃土)에
가지들은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멸렬(滅裂)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황홀(恍惚)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恩寵을 지니게 되는
과목(果木)에 과물(果物)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事態)처럼
나를 경악(驚愕)케 하는 것은 없다.
흔히 시(詩)를 잃고 저무는 한 때, 그 가을에도
나는 이 과목(果木)의 기적(奇蹟) 앞에 시력(視力)을 회복(回復)한다. 

시'과목'은 아주 딱딱하고 생경한 어휘들을 사용하여, 아주 부드럽고 풍요로운 대상에 대한 신선한 놀라움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일상 속에서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자연의 신비 또는 신의 은총과 같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환기시켜 준다. 사실 과일나무에 과일이 익어 가는 것이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도 화자는 그것에 대해 사태니 경악이니 기적이니 하는 표현을 쓰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 우리들의 잎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난다고 절창을 했던 박성룡시인의 "풀잎"詩碑. 충북 음성군 큰바위얼굴 조각공원안에 있다. 
 
평소에 무심히 지나쳤던 자연 현상에서 자연의 섭리가 갖는 신비로움과 그 의미를 비로소 깨닫고 그로부터 희열을 느끼는 것, 이러한 깨달음의 희열은 단지 '경악'에 머물지 않고 마지막 연에 나와 있듯이 시들어 가는 삶의 '시력'을 회복하는 데로 나아간다. 이것이 현대 시의 매력이며, 박성룡시인을 관조적 이미지스트 시인으로 자리매김한 조어(造語)의 힘이다.

'과목'이 태어난 일화도 재미있다.

"내 나이 20대 후반 가을에 쓴 것이었어. 광주 무등산 기슭의 도요지를 취재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마침 그때 내 고교적 은사 고재기선생님과 동행을 하게 되었지. 가을이 깊은 때라 산비탈 주위의 과수원에는 과실들이 주렁주렁 열려 빛을 내고 있었어. 무심결에 선생이 감탄을 하시더군. "야 참 좋구나. 저 과일나무에서 익어 가는 과일들 좀 봐!" 이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더구먼. 시의 소재를 발견한 것이야. 소재라고 하기보다는 영감이랄까 시의 깨달음 같은 것이 그때 스쳐갔던 것인데, 서울로 올라와 단번에 쓴 것이 이 시야" 

그는 20대 초반 시단에 데뷔할 무렵엔 자연주의적 서정시의 세계를 썼다면 30대 후반부터는 사회적 관심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시를, 그리고 50을 넘기면서부터는 자아에 대한 성찰의 시를 많이 썼다. 격변의 세월을 헤쳐 오면서도 어느 유파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자연이란 유파에 기대 생명을 노래했던 '고향은 땅끝'의 시인이었다. 

26세 젊은 나이에'郊外', '花甁情景' 등으로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등단, 이후 40년 동안 주옥같은 시를 써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春夏秋冬', '휘파람새', '冬柏꽃', '꽃喪輿', '고향은 땅끝', '풀잎' 등 일곱 권의 시집과 산문집'시로 쓰고 남은 생각들'을 펴냈다. 

지금 박성룡시인의 흔적을 해남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풀 이파리 하나, 꽃 이파리 하나, 곤충의 날개 하나, 여치소리 한 줄기, 귀뚜라미의 울음소리 한 가닥 한 가닥을 언어로 개발, 새로운 리듬을 창조하려했던 그의 시 정신을 배우고 기릴 수 있는 '풀잎과 과목'의 시인 박성룡문학콘텐츠를 그려본다. 
 

(김원자 호남대 외래교수, 본지편집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