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동주 시인 “가응 가응 수워얼래에”... 한과 멋의 시인

2012. 5. 18. 15:13카테고리 없음

문화콘텐츠를 위한 ‘땅 끝 해남의 인물자원’ (6) 이동주 시인

“가응 가응 수워얼래에”... 한과 멋의 시인


남도가락에 전통적 정한 실어


고산(孤山)과 초의(草依)를 모르면 해남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오우가, 어부사시사, 산중신곡 등 일찍이 우리말 우리 언어로 한 세계를 열었던 고산과, 사라져가던 한국의 다(茶)문화를 새롭게 개발하고 드높인 고승 초의선사, 그들을 잇는 또 한사람 해남인이 있다. 남도가락에 민족의 전통적 정한을 실어 노래했던 심호(心湖) 이동주시인(1920∼1979)이다. 이동주시인을 모른다면 그 또한 해남사람이 아니라고 하니 시인의 흔적을 찾아 해남 길을 나선다.

두륜산 계곡 대흥사 입구, 제5장춘교 바로 앞, 옛날 여관이 있던 자리에 그의 대표작 ‘강강술래’ 시비가 있다. 그 시가 중학교3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고 강강술래 시비가 해남 말고도 충남 보령 개화예술공원, 광주 사직공원 등 여러 곳에 있어 이동주 시인에 대한 사랑이 비단 해남에 국한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여울에 몰린 은어(銀魚)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빙 돈다


가응 가응 수워얼래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白薔微) 밭에

공작(孔雀)이 취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술래


뇌누리에 테프가 감긴다

열두 발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에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갈대가 스러진다

기폭(旗幅)이 찢어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이 시는 전통 민속춤인 강강술래를 형상화한 것이다. 춤을 추기 위해 서로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여인들의 발랄한 모습을 은어 떼에 비유하고, 그들의 동작과 가락을 백장미 밭의 공작으로 미화한 뒤, 자연과 인간이 합치된 순간을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이란 표현으로 요약함으로써 춤이 막바지에 이른 순간의 격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우리민요 강강술래는 이미 수없이 많은 버전으로 전승돼 왔거니와 이동주의 ‘강강술래’ 역시 여러 버전이 있다. 백병동 작곡 형진미노래, 그리고 유신의 곡을 소프라노 국영순이 불렀고 배승희 곡, 송혜정의 소프라노, 이복남 곡, 이병렬의 소프라노 등 시의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가 작곡가들의 창작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에 탁월해 보인다.


궁핍에서 온 비극적 인생관과 ‘한’의 세계


그의 탯자리는 현산면 읍호리다. 1920년 2월 28일 에서 이조참판을 지냈던 이재범의 증손자로 태어났다. 조부 때만 하더라도 사대부의 위세가 이어졌으나 선친 대에 이르러 살림이 기울기 시작하여 그가 보통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모친이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나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궁핍했다고 한다.


울 어머니 시집살이는 소리가 없었다

보고도 못 본 체 눈을 피해야 했고,

듣는 것만으로도 강물에 몰래 띄워야 했다    

- <사모곡>에서


어머니를 노래한 ‘사모곡’은 시인과 동시대 이 땅 어머니들의 보편적 삶의 전형이다. 해남이라는 남도의 끝자락은 한반도 전체를 대변하는 광의적 공간성으로 확대되며, 시인의 어머니가 겪었던 여자의 일생 또한 동시대 이 땅 어머니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남편의 바람 끼, 가문의 쇠퇴, 시부모의 구박, 밀려와 덮치는 삶의 무게 등 시인의 어머니가 맞닥뜨린, 등이 휠 것 같은 시집살이가 어찌 혼자만의 일이었겠는가? (최한선)

모두 5장 2백20여행으로 된 산문시 '사모곡'에는 그의 어린시절과 함께 양반 댁 며느리로서 현숙한 어머니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에 비해 그의 아버지는 "돈을 청루에 뿌리고/지쳐 돌아와 몸살이 풀리면 어디론가 떠나가는" 바람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이동주는 이러한 어머니로부터 문학적 소양을, 아버지로부터는 방랑벽을 이어 받아 그 자신 평생 한 곳에 안주를 못하고 팔도를 내집삼아 떠돌아다니는 방랑객이었고 타고난 낙천가였다. 스무 살 되던 해인 1940년, 조지훈의 시 '승무'를 읽고 그의 시에 심취하여 혜화전문학교 불교과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하였다.


‘시야말로 남길 값어치가 있는 유산’


나고 자란 환경이 성인이 되어서의 창작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이동주가 그런 사람이었다. 평론가 배경열은 '이동주의 시 세계를 1기 시간의 단절, 2기 공간의 단절, 3기 시작의 의지로 요약한바 있다. 유년시절 가문몰락이라는 비극적 체험이 희망을 꿈꾸기 전에 좌절부터 하고 마는 슬픈 태도로 나타나고, 비극적 인생관은 민족의 전통적 한과 이어져 시의 전편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발을 구르는 황토길/ 떴다 잠긴 눈썹달아/ 가락은 구비 꺾인 강물/ 손뼉을 치면 하늘과 땅이 맷돌을 가는데/ 머리 풀고 재 넘어가네/ 피를 토한 허허벌판에/ 앞을 막는 눈보라.  

- <남도창> 전문


그는 “일생 안주를 못하고(서정주)” “문단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방랑객(김봉호)”이었으며, “대문 밖만 나서면 표표히 떠돌아다니는 바람(윤재근) 같아서” 이 삿갓으로 불리기도 했다. “시밖에 쓸 수 없는 시인으로 세상에 와서, 시를 중심으로 그 중심권에서 모든 것을 확장하고 견인하면서, 모든 인생의 총체적 의미를 그 무게를 시에다 여과시킨 그래서 개인사적 의미를 민족사적 의미로까지 형상화시키는데 성공한 유수한 시인 중에 한사람(류근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79년 61세에 위암선고를 받고 마지막 7개월 동안에 모두 27편의 작품을 썼다. 죽음 앞에서 구체적인 죽음을 의식하면서 이만큼 작품을 남긴 예가 드물 것이라고 한다. 시 창작의 조건이 지극히 불리했음에도 그러한 조건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작품을 남긴 사람, 치열한 창작정신이 무엇에 근거했던 ‘시야말로 유산으로 남길 값어치가 있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망 직전까지 작품을 썼다. 약 300편의 주옥같은 시와 100여 편의 수필, 그리고 50여 편의 소설이 우리들에게 남겨졌다.  (김원자 호남대 외래교수, 본지고문)


사진설명- ‘강강술래’는 이동주 시인의 창작 태도를 대변해 준 대표작으로 1980년 한국문인협회가 중심이 돼 세운 시비에 새겨져 해남 대흥사 입구에 서 있다. 시인은 민족적 정한과 따스한 농촌의 정서가 밴 남도가락을 시 속에 살리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시 ‘강강술래’ 제대로 감상하기


시 ‘강강술래’는 전통 민속 ‘강강술래’를 소재로, 원무를 추고 있는 처녀들의 공동성, 도취성,  역동성을 그린 작품이다. 시각적인 회화성과 청각적인 음악성을 혼합하여 민족적인 미(美)와 한(恨)을 표현하고 있다. ‘가응 가응 수워월래에...’이렇게 처음에는 완만하게 객관적인 위치에서 나가다 '뛰자 ……'부터는 급템포로 바뀌어 긴박감과 힘이 분출되어, 마침내 작가 자신도 혼연 일체(渾然一體)가 되어 버리고 있다.

1∼2연. 여울에 몰린 은어 떼같이, 삐비꽃이 무리지어 반짝이듯이 소녀들의 흰 손은 달빛을 받아 반짝이며 움직인다. 달을 향해 손잡고 빙빙 도는 윤무는 마치 달무리가 진 신비로운 광경과 흡사하다. '여울에 몰린 은어떼'로 동적인 모습이 그려지고, 또한 소녀들의 밝은 이미지가 중첩되어 생동감이 넘친다.


                             


3연. 그렇게 힘차고 명랑하게 돌다가 움직임은 일순 느릿해진다. 선창자가 구성진 산조 가락으로 '강강술래'를 메기면, 일동은 따라서 그 구성진 가락을 애절하게 받는다. 삶은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것. 생동감 넘친 춤사위와 노랫가락에 넘치는 생명감을 구가할 수도 있고, 애잔한 가락에 삶의 쓸쓸함을 쏟아낼 수도 있다.

4∼6연. '백장미 밭'은 달빛이 은은하고 희붐하게 비친 춤터다. '공작'은 춤추는 소녀들을 비유한 말. 가장 아름다운 공간을 백장미로, 가장 아름다운 춤꾼을 '공작'으로 비유하여 강강술래가 벌어지는 광경을 극화한다. 자연과 혼연일체 된 도취의 경지에서는 온갖 상념을 잊은 채 오로지 춤사위에만 빠진다. 그리하여 뜀박질로 감정은 한껏 고조되어 간다.

'뛰어나 보자'의 보조사 '나'는 격정의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그것은 애환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다. 3연에서 노래되었던 삶의 비극성을 빠른 템포의 가락과 춤으로 잊고자 하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7∼9연. 달빛에 취하면 생명보다 더 지독하게 빠져든다. 달빛의 매혹적 분위기에 도취해 흠뻑 젖어 솟구치는 감정은 절정에 도달한다. 그 정감의 절정에서 기폭이 찢어지고 갈대가 쓰러지듯 춤사위는 급박한 리듬을 탄다. 빠른 리듬의 후렴이 반복되면서 윤무의 속도감도 증가한다. 소리의 반복, 춤사위의 다급함, 그것들이 어우러져 오직 춤동작에 빠질 때, 그 춤과 자아가 혼연일체가 되어 무아의 경지에 몰입한다. 그럴 즈음 삶의 애환도 잊어버린다. 오로지 춤만 남을 뿐이다.

이동주가 “우리 민족의 서정을 형상화한 서정시의 대가”로 인정받는 이유를 알만하다. 한국의 서정을 깊고 넓게 다룬 업적으로 전남 문화상, 현대문학상, 오월문예상, 자유문학상 등을 수상한 이유도 알 것 같다. ‘강강술래’를 국민가곡으로 애창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